시사이야기2015. 4. 14. 00:00

사진 출처 지식백과

 

 

1960년. 3.15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 시민들에 의한 혁명으로 이 결과 이승만이 하야하고 61년 군사정변으로 이어지는 혼란기를 겪는다.

 

1대 2대 3대 대통령을 역임한 자유당의 이승만은 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도 장기 집권을 위해서 관료조직과 경찰을 동원하여 3인조 9인조등 감시단을 만드는 등 조직적 부정선거 자행하게 된다.

 

이미 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 등으로 장기집권의 야욕을 보였던 이승만 정권에 대도시를 중심으로한 민주적 열망을 안은 시민 학생들은 이에 항거, 부정선거 규탄 데모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4월 111일 마산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학생의 주검이 발견됨으로써 시위는 격화되고 대학생, 시민, 고등학생 등등이 참여 전국적 규탄 데모가 일어난다.

 

4월 19일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당황한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게된다.

그리고 그날 계엄령 하에 경찰의 발포로 학생등이 쓰러지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극에 달하게 된다.

 

이에 지켜만 보고 있던 대학교수들도 들고 일어남으로써 학생을 중심으로 하여한 사회 전 계층으로 확산되어 시위가 확산되자

이승만 하야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시민들의 사망소식에 더이상 버틸수 없었던 이승만은 4월 26일 하야를 하게 된다.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이후 대한민국은 장면의 사퇴로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한으로 정부를 이끌었으며 그의 중도보수적 성향으로 3.15부정선거를 주도하거나 동참한 각계 각층의 관료나 경찰조직, 군조직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채 장면정부에 이양을 하게 되고 또한 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대한민국은 장기 독재정권하에 놓이게 된다.

 

 

 

4.19민주혁명은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지난한 가난과 민주적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 시민들의 열망과는 달리

조직적 부정선거와 장기집권을 위한 야욕, 20년간 축적된 부정부패과 부조리, 사회악에 항거하여 일어난 완연한 시민의식에서 나온 시민혁명이다. 시민의식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듬해 군사정권에 의해 찬탈되면서 완성된 시민혁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 정치사에 민주주의와 그 정신을 정립하기 위한 혁명으로 엄청난 의의를 가지며 그 정신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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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
시사이야기2015. 4. 13. 00:00

 

연합뉴스TV 캡쳐

 

 

성완종 1951년생 2015년 4월9일 졸.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서산토건대표, 대아건설 회장,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경남기업 회장, 서산장학재단 이사장, 자유민주연합 총재특보단장, 주한 에티오피아 명예총영사, 선진통일당 원내대표 등을 역임한 기업가이자 정치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정치적 야망을 가진 그는 2000년에 충청포럼을 출범시키면서 충청출신 정관계인사, 언론인 등과 발을 넓히는 등 인맥관리에 들어가고 그 해 16대 국회의원 공천에는 실패했으나 2003년 자민련 총재특보단장을 맡으면서 정치에 본격 입문하게 된다.

 

17대에서 낙선, 18대에는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지만 불법선거 벌금 500만원 확정으로 당선이 무효화되는 정치역정을 겪는다.

 

그러는 가운데 경남기업은 경영상황이 안좋아지면서 법정관리에 처하게 된다.

 

 

최근에 그는 이명박정부의 자원외교와 관련한 비리 의혹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던 중 2015년 4월 9일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살하기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김기춘비서실장에게 10만 달러,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는 7억원을 줬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시신 수습과정에서 상의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지에서는  김기춘, 허태열 전 비서실장 외에 ‘유정복 3억, 홍문종 2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완구 국무총리의 이름도 적혀 있었으며 언론은 이를 '성완종 리스트'로 부르며 보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당사자들은 관련이 없다고 모함이라고 발뺌을 하는 가운데 홍준표지사의 측근이 돈을 받아 전달한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있는 사실 등

검찰은 이내 수사팀을 구성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는 태세다.

 

아마도 성완종리스트가 상당부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여지며 2012년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명박 전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친이와 친박의 갈등이 자원외교 관련 비리수사에서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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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
라이프 건강2015. 4. 12. 18:17

 

 

혹시 나도 난청?!

 

난청이 의심 되신다면 다음 항목을 체크 해보세요.

 

조은소리보청기 난청 체크리스트

 

문항

 항목

CHECK

1

주변에 잡음이 있을 때 대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2

상대방에게 다시 말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3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4

전화통화에 어려움을 느낀다.

 

5

다른 사람에 비해 TV나 라디오 볼륨을 크게 듣는다.

 

6

상대방의 말이 웅얼거리는 듯이 들린다.

 

7

특정 발음이나 특정한 소리 듣기가 어렵다.

 

8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의 입술모양을 읽으려 한다.

 

9

귀 또는 머리에서 윙윙 소리, 귀뚜라미 소리 등이(이명) 들린다.

 

10

청취가 어렵고 부담스러워 모임이나 대화를 꺼려하게 된다.

 

 

             문항당 1점씩 계산하세요.

 

0~2 : 정상 3~6 : 난청의심 7점 이상 : 이비인후과 및 보청기센터 방문

 

 

 

 

조은사람기프트 조은소리보청기 모두 "은사람"과 함께하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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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
라이프 건강2015. 4. 11. 13:13

 

올바른 장례문화를 정착 시켜 국민들의 장례비용 절감을 위하여 설립된 재단으로 장례비

지원 서비스에 꼭 필요한 장례비 지원자 선정, 등록자 증서 발행 업무 , 전국의 지정

장례식장 및 지정 추모관 등의 업무제휴를 통하여 모든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장례비 절감

혜택을 드리고 더불어 일자리 창출에 그 설립 목적이 있다.

 

 

개인, 단체 또는 기업 등의 장례비 지원 선정 업무를 전국을 대상으로 하며, 이를 통하여 일자리 창출과 새로운 장례문화를 정착시키고 전통 장례문화의 올바른 뜻과 정신를 기려 올바른 효 사상을 고취시켜 보다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상은 비영리 재단법인 아름씨에스의 설립취지와 목적입니다.올바른 장례문화선도를 위한 그들은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Tips: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신 것 중에 일반적으로 상조상품만 가입하면 장례의 처음과 끝이 모두 해결되는 걸로 알고 계신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물론 장례라고 하는 것은 절차라는 것이 있고 이러한 절차부분은 장례지도사가 다 밟아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돈이 지불되는 것을 가지고 구분했을때

4가지의 큰 테마로 이루어집니다.

 

1.장례식장사용료,

2.장례상조서비스(각종 물품, 장례지도사, 도우미,차량 등등),

3.문상객식대,

4.장지(매장, 추모관, 자연장)

 

테마마다 큰 비용들이 지불되고 있습니다.

상조상품에 가입한다는 것은 2.장례상조서비스 부분만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라고 보시면 됩니다.



 
비영리 재단법인 아름씨에스에 단 한번 15만원 출연금을 내시면 회원에게 드리는 혜택이 너무 많습니다.



1)최소 505,000 ~ 1,009,000원을 현금 지원해 드립니다.

장례문화개선에 동참해주시는 고객님들께 지원해드리는 재단의 선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2)장례절차안내, 각종 물품, 도우미, 차량 등의 고품격 장례서비스를 후불 262만원에 받으실 수 있습니다.


3)지정장례식장을 3일 기준 1,009,000원에 사용하실수 있습니다.


4)지정추모관 및 자연장을 1,009,000원에 안치 하실수 있습니다.


5)이러한 재단의 취지와 목적을 홍보하시는 분들에게 평생 정규직의 기회를 드립니다.


6)......

비영리 재단법인 아름씨에스는 올바른 장례문화 정착 선도 재단으로 대국민 문화 캠페인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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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
시사이야기2015. 2. 12. 10:43

 

사진 WOW TV

 

 

이완구 차남의 소득세와 건강보험료.

이완구 차남은 외국계 로펌에서 무려 2억원의 연봉을 받는데 2011년과 2012년에는 소득신고를 하지 않았고

또 연봉의 일부만 신고하였으며, 현재 김&장에서 근무하면서 지난 2014년 4월에 신고했어야 될 소득을 올 2015년 1월에 신고했다는 것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건강보험료 또한 이완구와 형의 지역가입자로 등록하여 엄청난 연봉에도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점.

 

 

차남의 병역의혹 뿐만아니라

 

이완구 자신의 병역의혹

 

 

1971년 충남 홍성에서 첫 신검을 받았고 거기는 X-레이가 없어서 정밀진단이 안되어 1급 판정을 받았다고 했지만,

진선미의원에 의하면 병적기록표에 홍성에서의 신검이 아니라 최첨단 육군수도병원에서 받은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육군수도병원에서 1급판정을 받았다.

 

달리해석하면 육군수도병원에서 X-레이도 찍고 1급을 판정을 받았다고 봐야될 것 같다.

 

1974년 행정고시 합격. 고향인 홍성에서 사무관으로 재직중 재신검요청

 

1975년 고향 홍성 병무청에서 재신검. 평발로 보충역판정.

 

이쯤에서 그의 지위와 배경으로 이러한 판정을 받지 않았을지... 의혹이 들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삼청교육대 경력 관련.

 

전두환 군부정권 시절 치안본부에서 근무하다 국보위 내무분과 행정요원으로 파견나가면서  '불량배 현황'을 파악해 명단을 작성하고 사전 검거 계획을 수립하는 등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것으로 보국훈장광복장 수여 받는다.

수여의 근거가 되는 공적조서는 행자부에서 없다고 한다.

 

 

 

 

녹취록 파문.

 

그리고 그의 언론관이 또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이완구 녹취록 전문>

▲ 총장 및 교수 관련 부분
나도 대변인하면서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았지만 지금도 너희 선배들 나하고 진짜 형제처럼 산다. 언론인들, 내가 대학 총장도 만들어주고 나, 언론인…지금 이래 살아요. 40년 된 인연으로 이렇게 삽니다. 언론인 대 공직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인간적으로 친하게 되니까…내 친구도 대학 만든 놈들 있으니까 교수도 만들어주고 총장도 만들어주고…

▲김영란법 관련
내가 이번에 김영란법, 이거요, 김영란법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안되겠어 통과시켜야지 진짜로. 이번에 내가 지금 막고 있잖아, 그치? 내가 막고 있는 거 알고 있잖아 그치? 욕 먹어가면서. 내 가만히 있으려고 해. 가만히 있고 하려고 해.
통과시켜서, 여러분들도 한 번 보지도 못한 친척들 때문에 검경에 붙잡혀가서 당신 말이야 시골에 있는 친척이 밥 먹었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합니까 항변을 해봐. 당해봐.
내가 이번에 통과 시켜버려야겠어. 왜냐면 야당이 지금 통과시키려고 하는 거거든? 나는 가만히 있으면 돼. 지금까지 내가 공개적으로 막아줬는데 이제 안 막아줘. 이것들 웃기는 놈들 아니여 이거…지들 아마 검경에 불려 다니면 막 소리지를 거야.
김영란법이 뭐냐, 이렇게 얻어 먹잖아요? 3만원이 넘잖아? 1년 해서 100만원 넘잖아? 가…이게 김영란법이야. 이런게 없어지는 거지. 김영란법 만들어지면, 요게 못 먹는거지…하자 이거야. 해 보자. 

http://www.wowtv.co.kr/newscenter/news/view.asp?bcode=T30001000&artid=A201502110137

 

 

그의 발언은 마치 군사 독재시절 언론을 좌지우지했던 때의 권력을 연상시키고 있다.

인사개입과 언론사주...

 

그의 공직자로서의 자질을 엿볼 수있는 부분이다.

그가 국무총리가 된다면 그땐 이런 의혹들을 더 덮기위해서 가만히 자숙하며 국민을 위해 더 희생할 것이다???

 

 

 

그외 부동산 관련 등은 지난 글에서...

 

>>>>>>>>>>>>http://onetego.tistory.com/395

 

 

 

일정에 의하면 오늘이 총리 인준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에 있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총리인준을 반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반면 새누리당은 인준 처리로 가닥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국민여론은 9일 52.9%부정에서 10일 53.8% 부정으로 점점 수치가 늘어나고 있다.

 

어찌 되었든 총리 인준의 가부와 더불어 그의 여러가지 의혹에 대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법의 잣대로써 심판을 해야하지 않을까.

Posted by 링스러브
시사이야기2015. 2. 5. 06:00

 

 

 

 

이명박 전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되자마자 바로 이 전대통령의 탕진과 실정을 읊은 'MB의 비용'이 출간되었는데 '대통령의 시간'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다.

 

 

MB의 비용은 각 분야 전문가 16인이 MB정부가 발생시킨 각종 사기성 사업에 대한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피해금액을 아주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16인의 전문가

 

고기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김학진 충남대 화학과 교

이후천 협성대 신학대학 교수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박선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김신동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최상재 SBS제작본부 교양국 부장

박동천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목차를 한번 보

 

 

 

1부 탕진

자원외교의 겉과 속_고기영


프롤로그 … 22


I MB자원외교의 실상 … 26


정권실세들이 주도한 정치적 이벤트|소리만 요란했던 빈 수레|꼼수로 부풀려진 자주개발률|비리로 얼룩진 MB자원외교

 


II 대재앙을 부른 총체적 부실 투자 … 44


‘부실 종합선물세트’ 하베스트 인수|부도난 사업에 무모한 투자: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인수

 


III 주먹구구식 투자로 대규모 손실을 보다 … 70


묻지마 투자: 캐나다 셰일가스 사업|텅 빈 광구에 헛발질: 쿠르드 유전개발|한 치 앞도 못 본 얼치기 투자: 호주 GLNG프로젝트|원유처분권도 없는 이상한 석유 사업: 페루 사비아페루 인수

 


IV 해외자원개발의 성적표 … 86


석유공사의 막대한 투자, 형편없는 실적|가스공사의 손실은 앞으로가 더 무섭다|광물자원공사의 드러난 부실과 숨겨진 부실|눈덩이처럼 불어난 공기업 부채

 

V MB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 … 99


42조 원의 천문학적 빚을 남기다|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일|지금 당장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맨 얼굴의 4대강사업_박창근


프롤로그 … 106


I 4대강사업? 4대강사기! … 110


썩어가는 물, 괴물이 된 강|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홍수 예방 사업’

 


II 4대강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 119


수질 악화와 홍수 위험의 증가|모래 위의 보는 정말로 안전할까?|곳간의 탕진, 타락한 머슴

 


III 84조 원의 안부를 묻다 … 126

 

“4대강은 나눔입니다”: 국토부 사업 담합 1조 6635억 원|낙찰가,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농수산부 사업 담합 2992억 원|하수처리장의 수상쩍은 냄새: 환경부 사업 담합 4844억 원|늪에 빠진 습지: 훼손된 습지의 가치 5조 8712억 원|관리가 더 어렵다: 유지관리비 연간 5794억 원|끝없는 정비의 나날: 하천 정비 연간 1조 3359억 원|“물 좀 주소”: 취수원 이전 2조 5000억 원|소송, 소송, 소송: 시공사 보상금 4500억 원|물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 구미 단수 사태 34억 원|“사업은 원래 빚내서 하는 거야”: 금융 비용 연간 3200억 원|일자리 창출?: 추가 인건비 연간 778억 원|없느니만 못한 보洑: 보 철거 비용 2016억 원

 


IV 강은 흘러야 한다 … 146
비자금과 뇌물, 4대강사업의 탁류|최소한의 절차적 원칙도 무시하다|4대강사업 조사평가위원회의 근본적 한계|4대강에 다시 생명을|거짓이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기업비리와 특혜_김용진


프롤로그 … 156


I MB와 롯데의 밀월 … 159


진격의 롯데… ‘친구 게이트’|안전을 담보로 한 제2롯데월드 허용|부산 롯데타운 부지는 누구의 것인가|“친구끼리 시원하게 한 잔!” 맥주 사업 진출|면세점 사업에서 확고한 1위가 되다

 


II KT, ‘마이너스의 손’이 되다 … 173

자격 없는 정부의 무리한 인사 개입|제 발로 걷어찬 무궁화위성|“거기가 그렇게 싸” 사옥 헐값 매각|호방한(?) 투자의 ‘웃픈’ 결말

 


III MB맨은 포스코를 어떻게 망가뜨렸나 … 183


내리막길 위에 선 철강 1인자|파이시티, 영포라인, 그리고 포스코|“우리가 남이가!” 제이엔테크에 일감 몰아주기|성진지오텍 살리기? 수상한 M&A|대우인터내셔널을 둘러싼 몇 가지 의혹들

 



무너진 원전 안전의 신화_김학진


프롤로그 … 200


이래도 안전한 원전? … 203


파국 이상의 파국, 막대한 손실 규모|고비용, 비효율의 비리 백화점|원전 부실 경영, 어떻게 근절할 것인가

 


한식세계화 사업과 영부인_이후천


프롤로그 … 216


누구를 위한 한식세계화 사업인가 … 219


“거하게 한 턱!” 파티의 나날들|“영부인은 빈대떡이 좋다고 하셨어”|그 많던 예산은 어디로 갔을까? |진정한 한식세계화를 위하여

 


2부 실정


I 남북관계, 잃어버린 5년_김연철, 정세현 … 235

외교·안보 현장감이 제로인 정부|경제협력 중단의 쓰디쓴 뒷맛|이명박 정부가 막은 북·미관계 정상화|과도한 통일 강조를 경계한다



II 비리는 MB의 힘_박근용, 박선아 … 259


한없이 낮아진 인선 기준|현직 대통령이 비리 사건에 연루되다|대통령의 형 ‘만사형통’ 이상득|검찰, 권력형 비리에 왜 무력한가


III 부적격 인사의 후폭풍_김용진, 윤태범 … 277


사람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없다|MB 때 유달리 많았던 인사 비리|자기 패거리의 이익만을 생각하다 |부도덕한 이들의 전성시대



IV MB 부자 감세의 저주_강병구, 유종일 … 297


예산을 꼭 그리 썼어야 했는가|온 국민이 대기업을 밀어주고 있는 형국|그들은 공기업 선진화를 말할 자격이 없다|법인세 인하, 고용 효과 없다|임금이 올라야 경제가 산다|“담뱃세 올리면서, 법인세는 왜 못 건드리나”|출구가 안 보이는 지방재정 악화


V 보수 우위 언론 지형의 탄생_김신동, 최상재 … 317


MB에게 언론은 도구… 목표는 따로 있었다|청산되지 못한 독재 부역 언론인|민주 정권의 나이브한 미디어법 접근|MB, 성공했다|MB는 서툰 칼, 박근혜는 날카로운 칼



VI 보수정부 10년, 야권의 대안은 무엇인가_박동천, 이철희 … 335

MB식 정치, 유능하거나 포악하거나|천박함은 표피일 뿐, 본질은…|문제는 ‘어떤 민주주의인가’다| 대안을 만드는 정치를 요구한다

 

 

 

 

 

MB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한국사회는 MB정부에 물어야 할 것이 많다. 약속과는 달리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즉에 파탄 난 공약임이 증명되었다. 그보다는 그가 터무니없이 탕진한 국민세금에 대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공공의 곳간을 눈먼 돈 취급해 내다버리다시피 한 사례가 한둘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은 그 탕진과 실정의 기록을 정교한 수치로 분석해낸다. 16인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MB정부가 발생시킨 문제들을 조목조목 짚으며 그 피해 금액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기업 실무 현장 출신 학자, 조세재정 전문가, 전 통일부 장관, 토목공학과 교수, 방송사 PD, 시민운동 활동가, 변호사, 과학자, 경영학자, 경제학자 등이 지혜와 통찰을 짜내 MB의 기만을 낱낱이 밝힌다. 1부는 구체적인 비용으로 추산할 수 있는 사업들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 해외자원개발, 4대강사업, 롯데?KT?포스코 등 기업비리와 특혜, 원자력발전소 비리, 한식세계화 사업 등의 손실 금액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추산해본다. 2부는 MB정부 때 생긴 분명한 문제점이지만 경제적인 비용으로는 계산하기 난감한 부분들을 전문가 대담 형식으로 다룬다. 남북관계의 후퇴, 대통령 및 측근 비리, 한없이 낮아진 인사 기준, 부자 감세로 인한 국민경제의 피해, 언론 지형의 보수화, MB정권의 정치적 성격과 평가 등이 다뤄진다.

MB정부가 벌인 사업들의 터무니없는 손실을 목도하고 있노라면, 그가 얼마나 한국사회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놨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 그리고 미래에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MB가 남긴 구체적인 경제적 피해

MB정부가 추진한 자원외교는 국가에 엄청난 채무를 남겼다. 대기업 임원 출신 학자로 경제 실무를 보는 눈이 뛰어난 고기영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주요 에너지 공기업 3사에 생긴 새로운 빚만 해도 42조 원에 육박한다. 2015년 국방?외교?통일 예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액수다. 중요한 것은 최근 문제된 캐나다 하베스트 에너지, 맥시코 볼레오 구리광산처럼 빚낸 돈을 모두 날릴 만한 건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여섯 건의 해외자원개발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하며 최대 10조 원의 손해액을 도출해낸다. 특히 이 사업들은 잘하려고 하다가 투자에 실패했다기보다는, 겉보기 성과를 위해 절차를 무시해가며 사업을 추진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4대강사업의 ‘사기성’에 대해서는 대한하천학회 부회장인 박창근 교수가 나섰다. 4대강사업의 예산이 22조 원 넘게 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박창근 교수는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앞으로 예상되는 비용을 추산해낸다. 무려 84조 원이다. 담합으로 인한 부당이득, 훼손된 습지의 경제적 가치, 유지관리비, 하천 정비 비용, 취수원 이전비, 시공사 소송 보상금, 금융 비용, 추가 인건비…. 독자들은 앞으로 이 4대강이라는 괴물에 각 항목별로 얼마의 금액이 들어갈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4대강사업으로 인한 부작용은 대한민국이 향후 20년은 안고 가야 할 큰 짐이 될 것이다.

지금에 와서 제2롯데월드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사실 그 기원은 이명박 정부에 있다. 제2롯데월드는 노무현 정부까지만 해도 공군비행장 문제 등으로 절대 허가를 내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롯데그룹과 특별한 관계에 있던 MB는 일사천리로 허가를 내준다. 그 결과 서울 시민들은 국가안보상의 손실을 감수하는 것은 물론, 건물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대참사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MB정부 때 낙하산 인사 논란을 일으킨 KT와 포스코 역시 그 후폭풍에 기업이 휘청이고 있다. KT는 이석채 회장의 취임 이후 무궁화위성을 헐값에 매각하는가 하면 각종 사업을 비합리적으로 벌여 수천 억 원의 손실을 봤다. 포스코 역시 정준양 취임 이후 세계 철강 1위 기업에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부채가 늘고 신용등급은 떨어지는 등 국민이 소중히 일군 기업이 순식간에 부실하게 된 것이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첨단융합 전문위원, 국가 원천기술 로드맵 위원 등을 지낸 김용진 교수는 큰 시야에서 MB정부의 기업경영 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그 밖에 1부 후반부에서는 원자력발전소의 구조적 비리로 인한 5조 원이 넘는 피해, 그리고 금액은 작지만 김윤옥 여사의 한식세계화 사업의 실망스러운 행보도 짚어본다.

다시, MB를 부른다

MB의 비용은 단지 경제적인 비용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사의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듯, MB가 남긴 문제점들도 다른 측면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2부는 그 대표적인 주제 여섯 개를 가려 대담 형식으로 구성했다. 대북관계가 거의 차단된 것으로 인한 막대한 정치외교적 비용을 비롯해, 전무후무한 현직 대통령 비리 사건, 유난히 탐욕스러웠던 MB시기 권력형 비리,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는 인사 검증 시스템의 미비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잘못된 조세 재정 정책 방향과 권력의 언론장악으로 인한 비용도 빼놓을 수 없는 대화 주제다.

사실 마지막 대담자들이 상기시키듯, ‘반MB’는 그리 좋은 정치 전략이 아니다. 이 책을 대하는 어떤 이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문제를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고 불평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MB 개인을 인격적으로 탓하거나, 소위 반MB를 정교하게 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미래의 나라살림을 원활히 꾸려나가기 위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려 한다. 즉 MB의 비용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과제라는 문제의식에 바탕한 기획인 것이다. 물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과거를 그저 방치해두는 것이 아니라, 그 진통을 현명하게 치러낼 때 대한민국은 다시 도약의 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엮은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유종일 박사의 말을 음미할 만하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조금만 지나면 잊히고, 잘못된 과거가 되풀이되곤 한다. 대한민국이 바로 서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법제도와 관행 을 개혁해나가야 함은 물론, 심각한 비리와 범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중한 책임 추궁과 처벌을 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MB정권의 일탈과 잘못을 기록한 것이다.

(출판사 책소개, 리뷰)

 

 

 

 

탕진과 실정이라는 두 큰 챕터로 구성된 'MB의 비용'.

자화자찬의 '대통령의 시간' 그러나 자서전은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전문가 16인이 대신 밝혔다.

4대강 사업, 자원외교 국부유출, 방위사업 각종비리...

4자방 국정조사 반드시 해야 되지 않겠나.

 

참으로 MB스럽다.

 

이 말 말고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Posted by 링스러브
시사이야기2015. 2. 4. 06:00

 

http://www.youtube.com/watch?v=KA88qV3s14E KBS징비록 다큐영상 캡쳐

 

 

 

류성룡의 일대기

 

1542년에 태어난 유성룡은 이황의 아래에서 수학을 하였다.

22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2년뒤에 별시 문과를 거쳐 한원(翰苑)에 들어갔다가 승문원 권지부정자가 되었다.

이 후 승승장구하여 응교(應敎) 등을 거쳐 경연 검토관(經筵檢討官), 직제학(直提學), 부제학(副提學), 도승지, 대사헌, 대제학 등의 요직을 맡으며 별탈 없이 승진해 나갔다.

 

1589년 정여립의 난에 서인인 정철의 사주로 동인편에 있던 류성룡은 역모에 역일수도 있었으나,  선조의 신임으로 별탈없이 지나간다.

 

그러나 이 정여립의 난으로 하여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려지게 되는데 서인 정철의 처벌을 두고 죽이자는 강경파와 죽이지는 말자는 온건파로 갈려지게 된 것이다.

내분에 휩싸인 동인은 이렇게 이산해 정인홍은 북인, 류성룡 우성진 등은 남인으로 갈려지게 된다.

 

1591년 좌의정과 이조판서를 겸직하고 있을때 선조의 명장 천거 요청에 권율과 이순신을 천거하여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원균을 경상우수사에 배치하였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류성룡은 일본의 군사적 도발을 근본적으로 저지하기 위해서는 국방 안보 체제를 제대로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뒤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화기 제조, 성곽 수축, 병사 조련 등 군비 확충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순신이 역모로 몰렸을때 유일하게 그를 옹호하고 변호했으며

1598년 영의정이었던 그는 북인에 의해 탄핵을 당하여 낙향, 영남 남인을 형성하여 학문에 몰두하게된다.

 

 

 

징비란 《시경(詩經)》의 소비편(小毖篇)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왜란을 겪은 후 류성룡은 후세에 길이 남길 쓰라린 반성의 기록으로 이 책을 저술하게 된다. 이책의 내용에는 임진왜란의 원인과 경과 그리고 자신의 잘못과 조정의 실책, 백성들의 임금과 조정에 대한 원망 등을 담고 있다. 《징비록》은 이후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의 공과를 평가하는데 사용되었다.

특히 류성룡은 스승인 퇴계 이황의 학설에 따라 이기론(理氣論)을 펼치고 양명학을 비판했으며 이황의 이선기후설(理先氣後說)을 좇아 기(氣)는 이(理)가 아니면 생(生)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여 기보다 앞서 있는 실체로서의 이를 규정했다.

류성룡은 양명학의 핵심적 이론인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과 치양지설(致良知說)이 ‘굽은 것을 바로 잡으려다 지나치게 곧아진(矯枉而過直)’ 폐단에 빠진 것으로 불교의 학설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하나에 치중됨이 없이 병진해야 한다는 지행병진설(知行竝進說)을 주장했다.

그가 남긴 저작 중 『징비록』(懲毖錄)은 이러한 ‘알면 행하여야 한다’는 지행병진설이 잘 반영된 책으로 알려 있다. 참혹한 국난의 하나였던 임진왜란에서의 아픈 경험을 거울삼아 다시 그러한 수난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후세를 경계하기 위하여 남긴 저술이다. 임진왜란의 전모를 정확하고 생생하게 비춰주고 있어 임진왜란에 관한 많은 기록 가운데서도 귀중한 사료(史料)로 평가되고 있다.

 

《징비록》은 〈징비록〉 상·하의 두 권과 〈녹후잡기〉, 〈근포록〉(芹曝錄) 2권, 〈진사록〉(辰巳錄) 9권, 〈군문등록〉(軍門謄錄)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쟁 전의 조선과 일본의 상황과 관계,

일본의 침략에 따른 조선 사회의 붕괴와 의병 봉기,

이순신의 승전, 전선 교착,

강화 교섭과 정유재란,

수군의 최후 공격, 일본군의 패퇴

 

등이 편년체로 기록되어 있다.

 

근포록은 저자가 올린 차(箚) 및 계사(啓辭)를 모은 것이고, 진사록은 임진년(1592년)으로부터 계사년(1593년)까지 종군하는 동안의 장계를 수록하고 있다.

군문등록은 1595년(선조 28)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저자가 도체찰사로 재임 중의 문이류(文移類)를 모은 것으로 여기에 자서(自敍)와 자발(自跋)이 들어 있다. 이 책의 처음 간행은 1633년(인조 11) 저자의 아들 류진이 《서애집(西厓集)》을 간행, 이후 원본의 체재를 갖추었다는 그 전본도 간행되었다. 1695년 (숙종 21년 : 일본 겐로쿠 8년) 일본 교토(京都) 야마토야에서 중간하였으며, 1712년(숙종 38) 조정에서 《징비록》의 일본 수출을 엄금할 것을 명령한 일이 있다. - 위키백과

 

 

류성룡은 ≪징비록≫에 ‘우리 국가가 보존된 것은 오로지 남해 해전에서의 승리 때문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류성룡의 여러 업적

 

 

류성룡은 김성일의 조선통신사 파견 이후에 그의 말에서 정확한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전란에 대비한다.

일본의 침공이 예상된다며 조정이 만류를 무릅쓰고 명에 알리는가하며, 그 동안의 조선의 방어체제인 방승제략이 아닌 진관법을 주장한다.

방승제략은 적이 침공해오면 흩어져 있던 군사를 한군데 모아서 한꺼번에 적을 섬멸한다는 것이고 여기서 패할시는 더 이상의 군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관체제는 중요한 요지 요지에 진을 쳐서 방어를 하자는 것이다.

끝내 채택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권율 이순신 을 천거 하는 등 인재을 등용하였다.

특히 이순신은 여섯품계를 승진시켜 전라좌수사에 앉힌다.

그 배경에는 이순신의 형인 요신과 친구 사이였고 어린때 부터 그의 됨됨이를 알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역적으로 몰릴때에는 그를 믿고 구명에 나섰던 인물이다.

 

선조의 몽진이 압록강을 넘을 즈음에 그 또한 막아선 이가 바로 류성룡이다.

그리한다면 더 이상의 조선의 왕이 아니다...

 

 

 

 

류성룡은 군사개혁도 단행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직업군인양성기관인 훈련도감을 설치한 것이다.

또한 양반도 병역의무을 지게 함으로써 나라를 구하는데 양반 상놈이 어디있는가라며 속오군을 만들었다.

양반들의 반대가 얼마나 심했겠는가.

 

 

 

 

1592년 12월 명나라의 군대가 지원을 오면서 조명연합군은 일본군을 무찌르며 남하, 평양을 수복, 계속 남하를 하려하였으나 임진강이 가로 막고 있었다.

 

여기서 류성룡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군사를 시켜 칡넝쿨로 새끼로 꼬고 밧줄을 만들게 하고 강 양쪽에 베틀 같은 구조물을 만들어 잡아 당김으로써 부교(浮橋)를 만들었다.

 

이로써 군사, 군수품, 대포등 을 안전하게 옮길수가 있었다.

 

미국의 사학자 헐버트는 한국의 4대 발명품으로 금속활자 · 거북선 · 한글 · 부교를 꼽았는데, 부교가 바로 유성룡이 만든 임진강 부교다.

 

 

 

징비록에 의하면

 

나는 우봉 현령 이희원에게 고을 사람 몇백 명을 데리고 밤새워 먼저 가서 칡덩굴을 거두어 임진강 어귀에 모이라고 약조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임진당으로 달려가서 내려다보니, 날씨가 따뜻해서 강 가운데의 얼음이 내려앉아 물이 흘렀기 때문에 강 너비가 매우 넓었다. 경기 수사 이빈과 장단 부사 한덕원 등이 모두 도착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이빈에게 태만하여 준비하지 못한 책임을 추궁하여 장(杖)을 때렸다. 그리고 우봉 사람들을 불러 칡을 수납하여 모두 앞에다 쌓았으나, 여러 사람들은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하였다.

새끼를 꼬아 강을 가로지를 만한 동아줄 15개를 마련했다. 또 강 남쪽과 북쪽 두 언덕에 땅을 파 서로 마주보게 두 기둥을 세워 움직이지 않게 하고, 나무 하나를 눕혀 기둥 안쪽에 놓아 붙들어 매서 베틀 모양으로 만들었다. 거기에다 동아줄을 팽팽하게 늘여 강 건너 기둥의 가로지른 나무에 매어 날줄을 만들었다. 강 너비가 너무 넓어서 동아줄 중간이 반쯤 물에 잠겨 올라오지 않으니, 모두 “이는 사람 힘만 헛되게 없앨 뿐 어떻게 다리가 되겠는가” 라고 말했다.

나는 강가에 있는 군사 천여 명에게 각각 3, 4척 되는 짧은 통나무를 가지고 동아줄을 몇 번 감아 돌려 저 끝과 이 끝이 팽팽하게 조이게 하였다. 그러자 물에 잠긴 동아줄이 비로소 서면서 통나무가 서로 잇댄 것이 빗살처럼 강 위에 걸터앉아 활 모양 비슷한 둥근다리 하나가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그렇게 한 뒤에 그 위에다 가는 버드나무 · 싸리 · 갈대를 섞어서 펴고 흙을 덮었다.

명군이 이것을 보고 매우 기쁘게 여겨 다리 위로 말을 달려 지나갔다. 먼저 화포와 군기를 모두 이 다리로 운반하였다.

http://blog.daum.net/dandakhan/16570499

 

 

 

 

 

기근이 극도에 이르러 심지어 사람의고기를 먹으면서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선조실록 1594년 1월 17일

 

극도의 기근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류성룡의 경제살리기가 펼쳐진다.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던 압록강일대에 자유무역지대 설치하고

무명이나  소금 수출, 식량 수입하는 것을 허용하며 민생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한글로 된 선조의 교지.

거기에는

"왜적의 머리를 베어오면 천민의 신분을 면하겠노라"

는 글이 적혔있었다.

 

바로 면천법이다.

천민들이 의병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우고 또한 양민으로 천민의 신분을 벗어 주겠다는 의병 모병에도 앞장섰다.

 

 

 

 

류성룡은 세제개혁도 단행했는데 불합리한 방납(조선 시대, 하급 관리나 상인들이 공물을 나라에 대신 바치고 대가로 백성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받아 내던 일)을 폐지하고, 가구별징세를 토지별 징세로 바꿈으로써 양반이나 관료 등으로부터 엄청난 반대가 있었지만 관철시킴으로써 현 박근혜정부도 하지 못하는

부자증세, 서민감세를 제대로 정착시켜서 나중에 대동법으로 이어지게 했다.

또한 둔전을 두어서 평민이나 군사들이 땅을 개간하여 경작을 할수 있도록 했다.

 

 

 

 

 

유성룡의 관운에는 먹구름이 끼고 있었습니다. 선조가 그를 견제하며 정적으로 여긴 탓입니다. 그럼에도 유성룡은 선조를 적대시하지 않고 속 좁은 선조에게 양보하면서도 실리는 챙겨내는 재능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선조가 대신들이 광해군을 세자로 세우는 문제를 결정해 주기를 바라자 세자에게 아예 양위하겠다며 몽니를 부렸지만 선조를 달래 양위 소동을 중지시킨 것도 그가 한 일입니다.

 대동법 실시와 천민, 노비를 양민으로 바꿔주고 세금과 병역 의무를 지게 하는 제도 역시 기득권층의 강력한 반대 여론에 망설이는 선조를 설득해 시행했습니다. 콧대 높은 명나라 사신들 앞에서 주눅이 든 선조를 지키고 그의 위엄을 살려준 것도, 심지어 명나라에 파견하는 사신이나 외교 문서의 작성에서 선조를 세우고 중요한 전술전략을 제시한 것도 유성룡이었습니다. 이처럼 유성룡은 전란의 위기 현장에서 선조와 줄다리기를 하며 나라의 안위를 지키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만, 군주의 재목이 부족해 지혜로운 참모를 끝까지 견인하지 못한 것이 선조에게나 유성룡에게 불행이었습니다. 그는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 군주에 대한 불평, 불만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손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려고 전란의 자초지종을《징비록》으로 남겼고 그의 경륜을 후학들에게 전수하는데 전력했습니다.

 유성룡은 이처럼 어떤 환경의 어려움이 닥쳐와도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해냄으로써‘CEO를 보좌해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 가야 하는 이 시대의 스텝들이 본받아야 할 진정한 참모상을 보여준 우리 역사의 참 영웅이자 리더였습니다.

http://www.insightofgscaltex.com/?p=38395 

 

 

 

 

장승대 세명대 교수는 지금 시대에 문무겸전의 리더십을 발휘한 서애 류성룡의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성룡은 자강 자주 외교를 주창하며,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신무기를 도입하는가 하면 인재를 등용할 때도 신분을 초월해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중시했습니다. 유교의 선비정신을 유지하되 경제실용을 앞세운 거지요. 서애 류성룡이 임란 극복의 최고 공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고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겸비한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한 덕분입니다.”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86

 

 

 

 

유성룡 선생은 민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과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조선 최고의 경세가답게 ‘위기 극복의 최선책은 민심을 얻는데 있으며, 민심 획득의 핵심은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제도와 관습의 타파에 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지를 실천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면천법(免賤法)을 제정해서 천민도 전공을 세우면 양인(良人)은 물론 벼슬까지 얻을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또 조세부과의 기준을 호(戶)에서 농지소유의 규모로 바꾸는 작미법(作米法)의 제정을 통해 농민의 세 부담을 크게 줄여 주었다. 게다가 양반들도 군역을 맡도록 하는 병무개혁을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군대가 속오군(束伍軍)이다.

조선 민초들은 유성룡 선생의 잇따른 개혁조치에 대해 환호했다. 개전 20일 만에 수도 한양을 빼앗겼던 조선이 임진왜란을 승리로 마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반된 민심을 하나로 결집시키는데 성공했던 그의 뛰어난 경륜과 지략 때문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나가자 선조를 비롯한 서인과 북인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서인과 북인들은 신분제 질서를 개혁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에 메스를 들이댄 유성룡 선생을 용서할 수 없었다.

선조 역시 전쟁영웅으로서 백성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그의 존재가 껄끄럽기 그지없었다. 그 결과는 유성룡 선생의 파직으로 이어졌다.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고향인 안동으로 낙향했다.

그 이후 선조는 인간적인 미안함 때문인지 여러 차례 유성룡 선생을 불렀지만, 그는 조정의 부름에 일체 응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이 경험한 임진왜란의 참상과 후대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사항들을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자신의 남은 여생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징비록≫이다. ≪징비록≫은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유산으로서 거기에는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유성룡 선생의 불타는 신념, 냉철한 확집, 고결한 투쟁, 눈물겨운 정성이 가득 담겨져 있다.

그러나 후손들에 대한 유성룡 선생의 소망과 기대는 413년이 지난 지금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정당과 정치리더들은 안일한 붕당구조의 틀 속에서 기득권고수와 이전투구만을 일삼다가 정치권의 대공황이라는 혼돈의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공동체 이익과 민생문제 해결에 소홀했던 탓이라고 생각된다. 카오스로 점철된 오늘, 선각자 유성룡 선생의 탁월한 리더십과 나라사랑 정신이 애타게 그리운 것도 그 때문이다.

http://www.expres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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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
시사이야기2015. 2. 2. 06:00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한산도대첩을 그린 민족 기록화 (전쟁기념관)

 

 

 

임진왜란

1592년 4월 13일(음력) 임진왜란 발발

1598년까지 이어진 7년간의 전쟁으로 동북아시아 3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제1차 침략을 임진왜란, 1597년의 제2차 침략을 정유재란이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당시 조선은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이이의 의견이 묵살되는등 전혀 전쟁의 준비가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동인과 서인의 정쟁은 날로 심해져갔다. 

 

조선의 초기 사대교린정책은 명을 숭상하고 왜나 오랑캐를 배척하는 정책에 의해서 왜를 교린하고 있었는데,

한편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 정복의 야망으로 있던 때 조선통신사로 파견된 집권세력이덨던 동인의 김성일에 의해 전쟁의 기미를 느낄수 없다는 견해로 하여 일본의 전쟁의 뜻을 간파하지 못했다.

집권세력으로서 백성의 동요가 두려웠던 나머지 모두들 김성일의 의견을 따르게 된다.

 

 

건국후 200여년간 평화가 유지되었던 까닭에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대비도 없었으며 군기또한 굉장히 해이했던 것으로보니다. 문서상으로만 병력이 존재하고 실제로는 군역을 부과하지 않거나 대역인을 세우고 군포를 납부하도록 하는 방군수포와 대역납포가 공공연히 이뤄졌다.
오히려 경상감사 김수와 전라감사 이광이 선조에게 명받고 성곽을 수리하고 병장비를 정비하면서 전쟁 준비를 서두르자 지방에서는 부역이 너무 가혹하다는 상소가 빗발쳤고 탄핵까지 받을 뻔하였다.

 

 

 

1592년 4월 13일(음력) 20만 병사로 조선을 침공한 일본.

 

4월 14일 정발의 부산진성 함락

 

4월 15일 송상현의 동래성을  함락

 

4월 25일 상주 함락

 

4월 28일 충주 탄금대를 배수에 진을 친 신립의 패배.

 

 

세 갈래 길로 북진 조선을 함락시켜가던 일본

1. 고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으로 하는 제1군은 부산·밀양·대구·상주·문경 등을 거쳐 충주에 이르고

2. 제2군은 가토 기요마사가 인솔하여 울산·영천 등을 거쳐 충주에서 제1군과 합세하여 한양으로 진군하였으며,

3. 구로다 나가마사의 제3군은 김해를 지나 추풍령을 넘어 북진하였다.

 

 

5월 2일 개전 20일만에 한양을 점령.

 

5월 16일 유해령전투 부원수 신각이 승리로 이끈 조선 육군의 최초의 승리

 

5월 18일 임진강 함락

 

5월 24일 정암진전투 곽재우등 조선 의병이 최초로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6월 13일 평양 함락

 

이미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백성을 버렸으며 몽진에 몽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화가난 백성이 노비문서를 불태우는 등 궁궐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5월 7일 옥포해전에서 왜군 42척을 격침. 이순신의 첫 승전이면서 전쟁 이후 조선수군의 첫 승리.

 

5월 8일 적진포해전 왜선 5척 왜군 2840명 전사

 

5월 29일 사천에서 왜군 13척을 전멸. 거북선을 처음으로 투입.

 

6월 2일 당포해전 왜선 21척 격침. 왜군 2820명 전사

 

6월 5일 당항포 왜선 26척 왜군 2720명 전사

 

7월 8일 . 한산도대첩. 이순신 3대 대첩(한산도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

한산도대첩. 임진왜란 3대 대첩(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진주성대첩)중 하나로 학이 날개를 편 것과 같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학익진 전법으로 왜선 59척을 격침 나포. 4~5000왜병 전사.

왜의 수륙병진계획을 좌절시켰으며 왜수군의 주력을 거의 괴멸시킨 대첩이다.

이 한산도대첩의 승리로하여 조선수군이 남해안의 제해권을 거의 장악. 임진왜란의 판도를 달리하게 하는 전투였다.

 

7월 10일 경남 진해 안골포에서 왜선 42척 모두 격침. 왜군 3960명 전사

 

9월 1일 부산포 왜선 128척 왜군 5000여명 사상 한산도대첩후 잠잠하던 해전이 부산포승리이후 완전 제해권을 장악

 

 

외국의 역사가 헐버트(Hulbert,H.G.)도 “이 해전은 조선의 살라미스(Salamis) 해전이라 할 수 있다. 이 해전이야말로 도요토미(豊臣秀吉)의 조선 침략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라고 감탄하였다.

 

 

전국 각지의 의병 봉기

김면 경상도 거창 고령

조헌 충청도 옥천

곽재우 경상도 의령

고경명 전라도 장흥

김천일 호남에서 거병

정문부 함경도

휴정 유정 묘향산 승병

등등

 

 

7월 8일 권율 황진의 1000여 조선군이 2000여 왜군과 맞서 승리.

 

10월 4일~10일  진주성대첩 (임진왜란 3대 대첩중의 하나) 김시민의 3800여 관군과 백성이 3만 왜군을 물리침.

김시민을 포함 1000여명 사상 일본군 10300여명 사상.

 

1593년 2월 13일 행주대첩(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 2800여 병사가 3만 왜군을 물리침

조선군 130여명 사상. 왜군 15000여명 전사 9000여명 중상

 

1597년 7월 4일 칠천량 해전 원균의 거북선 3척과 판옥선 100여선 침몰 수군 20000여명 궤멸.

원균의 사망. 배설이 12척을 끌로 도주 정유재란의 빌미가 됨

 

8월 20일 정유재란 발발. 명나라와 왜와의 임진왜란 종결을 위한 강화가 결렬되자 왜가 재 침공해 옴

 

9월 16일 명량해전 13척의 전함으로 왜선 31척 완파 92척 판파. 칠천량해전 당시 역모의 모함으로 파직되어 있던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되어 전쟁에 투입. 선조가 칠천량 패전 이후 조선수군을 폐지하려고 하였으나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비록 전선의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은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여 수군폐지불가론을 펼쳤다.

 

1598년 7월 19일 절이도해전 전라도 고흥 절이도에서 왜선 50여척 왜군 16000여명 사망

 

12월 16일 노량해전 이순신이 전사한 전투. 왜선 200여척 침몰. 100여척 나포. 150여척 파손.

도주하는 일본 함대를 추격하던 이순신은 관음포에서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잔병들의 퇴각,  노량해전이 끝나고 정유재란도 끝이 난다.

 

그리고 7년간의 긴 전쟁도 끝이 난다.

 

 

7년간의 전쟁 이후 100만명 사망, 경작지의 약 70% 유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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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
시사이야기2015. 1. 31. 13:39

 

세계일보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50127190206514

 

 

 

이완구 국무총리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녀의 병역면제와 관련하여서는 즉각 즉각 자료와 함께 해명해 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병역면제 부분에서는 무릎 인대가 완전 파열되어 수술했고 면제가 합당한 것으로 병역 부분은 일단락 될 것으로 보이지만

 

부동산 투기 의혹 관련해서는 병역 면제건과 달리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가 뒤늦게 해명을 하고 나서고 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은 현재 이 후보의 차남이 소유한 경기도 성남 판교의 1237㎡(374평)넓이의 땅으로 2001년 장인 장모가 구입해서 딸인 이 후보의 배우자에게 증여, 그리고 2011년 차남에게 증여가 된 상황이다.

2001년 당시시지가 총액이 2억 6412만원이던 것이 2011년에는 18억 307만원으로 폭등했다.

당시에 이 후보자의 장인 뿐만아니라 지인, 다른 국회의원 자녀들도 같은 날짜에 13개 필지를 구입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실제로 친인척과 지인 등이 판교 땅을 사들일 때 이 후보자가 직접 관여한 정황도 드러났다. 장인과 함께 판교 땅을 산 이 후보자의 동창 강아무개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후보자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며 땅을 사라고 권유했다, 이후 이 후보자와 함께 현장으로 가서 땅을 직접 둘러보고 샀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이 땅을 1년 후에 이 후보자 장모에게 팔았다고 밝혔다.

 

핵심 쟁점은 이 후보자 쪽이 판교 개발 정보를 미리 알고 땅을 매입했는지다. 어떤 근거로 "땅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냐는 의문이다. 해당 토지가 포함된 판교신도시 계획은 2001년 6월 당정 협의를 거쳐서 발표됐다. 당시 이 후보자는 공동 여당인 자민련의 원내총무였다. 이 후보자의 장모는 그해 7월 그 지역 땅을 매입했고, 두 달 뒤 정부의 판교 개발 방침이 최종 확정됐다.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77674&CMPT_CD=P0001

 

 

 

또한 2003년에 구입한 49평 규모의 타워팰리스 아파트를 6억 2천만원에 구입을 했다고 공직자 재산으로 신고 한 것으로 나오는데, 9개월 만에 되파는 과정에서 3억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남긴 부분도 강하게 의혹이 제기 되고 있다.

 

11억 7980만원에 구입해 16억 4000만원에 되팔면서 1억 4766만의 세금을 뺀 3억 1254만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는데 이 부분은 이 후보자 측에서 밝힌 부분이지만 9개월 만에 시세차익으로 고액을 챙겼다는 부분, 공직자 재산 신고에 다르게 신고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더 정확한 검증이 되겠지만 의혹에 대해서는 한치의 의혹도 없이 밝혀져야 할 것이며, 같은 날짜에 땅 구입이 확인된 다른 국회의원 자녀들의 재산도 함께 조사되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법적으로는 문제가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짙은 의혹의 가운데 있는 이완구 총리후보자의 공직자로서의 자질과 도덕성 여부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Posted by 링스러브
시사이야기2015. 1. 30. 17:46

한겨레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출간되자마자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는데, 주된 내용은 자원외교와 4대강 살리기, 세종시 수정안, 광우병파동, 남북정상회담 에 대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서거 관련, 2007년 경선과정, 친이 친박간의 갈등 등과 같은 민감한 부분은 뺏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2~3년 뒤에 2탄으로 나올 것이라고 한다.

 

여튼 출간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란이 되고 있는 큰 이유는

 

 

 

 

자원외교와 관련하여 (MB 자원외교에 대한 나의 생각 http://onetego.tistory.com/333)

 

해외 자원 개발의 총괄 지휘는 국무총리실에서 맡았으며 이명박 정부가 한승수 국무총리를 임명한 것, 그리고 한총리가 자원외교에 총괄지휘를 맡았다고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실제 자원외교와 관련하여 MOU체결 건수는 오히려 이명박 전 대통령이 6배가 많다고 JTBC에서 밝힌바가 있다.

 

그래서 재임시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스스의 치적으로 치켜세우며 빛나는 성과라고 역설했었지만 오히려 자원외교와 관련하여 국정조사와 맞물리니 책임을 한총리에게 떠넘기는 양상이다.

 

또한 자원외교특사로 전 세계를 돌았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나, 자원외교 실무를 도맡았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 대해선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경향신문에 의하면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자원외교의 장밋빛 성과를 줄곧 강조했다.

그는 2012년 12월14일 해외 자원개발 성과 보고대회에서 “해외 자원개발에 종사하는 여러분들은 단순한 경제활동이기보다 국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입장에서 자원은 경제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 안보와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290600135&code=910100

 

"임기 중 내가 해외순방을 하면서 맺은 45건의 양해각서 중 포괄적 교류사업인 15건을 제외하면 자원사업과 관련된 양해각서가 30건이다. 이 중 사업으로 연결된 것은 7건에 이른다."

 

“자원 외교는 그 성과가 10년에서 30년까지 걸쳐 나타나는 장기적 사업이다. 퇴임한 지 2년도 안된 상황에서 자원 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자원 개발 과정에서 비리가 있다면 철저히 조사하여 관련자를 엄벌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침소봉대해 자원 외교나 해외 자원 개발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 관련하여서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나의 생각 http://onetego.tistory.com/329)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내가 대운하를 만들기 위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벌였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라면서 “감사원의 비전문가들이 단기간에 판단해 결론을 내릴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한반도 대운하가 좌절된 원인으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들의 ‘반대’를 지목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은 국회 예산 통과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일부에서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라며 “17대 대선 때 치열한 당내 경선 과정에서 반대편에 섰던 의원들이 그 중심에 섰다”고 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부채 누적과 22조원의 천문학적 예산 투자 등 4대강 사업을 둘러싼 ‘혈세 낭비’ 비판에 대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투자’로 반박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290600135&code=910100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환경개선과 경제위기 극복을 한꺼번에 만족시키면서 적시에 추진될 수 있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세계 금융위기를 다른 OECD국가들보다 빨리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1년 10월 오바마 대통령의 비공식 만찬에서 오바마는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정 투자에 나설 수 있었는지 물었다…나는 세계 금융위기가 들이닥쳤을 때 우리가 신속히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을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광우병사태와 관련하여서는

 

한미 신뢰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소고기 수입은 잘 된 성과라고 했다.

국민이 느끼는 검역주권을 포기하면서 병든소를 먹어야한다는 인식과는 너무 다르다.

또한 소고기 협상은 노무현 전 정부에서 떠넘겨졌다고도 언급했다.

 

 

“광우병 사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 신뢰도를 높이고 한·미관계 신뢰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원칙을 지킨 것이 국제사회에 깊은 인상을 줬다.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의 국가부도 사태를 막은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나 한국의 G20 참여 등 굵직한 외교적 성과 이면에는 광우병 사태로 쌓인 국제사회의 신뢰가 있었다.”

 

“한·미 양국 대통령이 몇 차례에 걸쳐 약속한 일을 마무리짓지 않은 채 퇴임하겠다니, 넘겨받은 이 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가슴이 답답했다. (중략) 뼛조각 사건과 그로 인한 수차례의 한·미 정상 간 약속으로 협상 여지가 좁아진 것은 바로 그들(민주당)이 집권하던 때 벌어진 일 아니었던가.”

Posted by 링스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