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야기2015. 4. 14. 00:00

사진 출처 지식백과

 

 

1960년. 3.15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 시민들에 의한 혁명으로 이 결과 이승만이 하야하고 61년 군사정변으로 이어지는 혼란기를 겪는다.

 

1대 2대 3대 대통령을 역임한 자유당의 이승만은 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도 장기 집권을 위해서 관료조직과 경찰을 동원하여 3인조 9인조등 감시단을 만드는 등 조직적 부정선거 자행하게 된다.

 

이미 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 등으로 장기집권의 야욕을 보였던 이승만 정권에 대도시를 중심으로한 민주적 열망을 안은 시민 학생들은 이에 항거, 부정선거 규탄 데모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4월 111일 마산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학생의 주검이 발견됨으로써 시위는 격화되고 대학생, 시민, 고등학생 등등이 참여 전국적 규탄 데모가 일어난다.

 

4월 19일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당황한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게된다.

그리고 그날 계엄령 하에 경찰의 발포로 학생등이 쓰러지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극에 달하게 된다.

 

이에 지켜만 보고 있던 대학교수들도 들고 일어남으로써 학생을 중심으로 하여한 사회 전 계층으로 확산되어 시위가 확산되자

이승만 하야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시민들의 사망소식에 더이상 버틸수 없었던 이승만은 4월 26일 하야를 하게 된다.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이후 대한민국은 장면의 사퇴로 허정이 대통령 권한대한으로 정부를 이끌었으며 그의 중도보수적 성향으로 3.15부정선거를 주도하거나 동참한 각계 각층의 관료나 경찰조직, 군조직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채 장면정부에 이양을 하게 되고 또한 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대한민국은 장기 독재정권하에 놓이게 된다.

 

 

 

4.19민주혁명은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지난한 가난과 민주적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 시민들의 열망과는 달리

조직적 부정선거와 장기집권을 위한 야욕, 20년간 축적된 부정부패과 부조리, 사회악에 항거하여 일어난 완연한 시민의식에서 나온 시민혁명이다. 시민의식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듬해 군사정권에 의해 찬탈되면서 완성된 시민혁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 정치사에 민주주의와 그 정신을 정립하기 위한 혁명으로 엄청난 의의를 가지며 그 정신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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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