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야기2015. 4. 17. 13:07

 

위키백과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

 

그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은 일본의 유명한 장수가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강력한 출병요구에도 조선에 출병을 하지 않은 것은 능수능란한 그의 지략과 전략 때문일 것이다.

 

텅텅 비어버린 일본 본토를 지켜야한다는 명분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전 일본군의 조선출병으로 약해진 일본 전역을 장악 할 수 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이에야스가 임진왜란에 참전을 했다면 임진왜란의 그 끝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200년 평화가 가지고 온 조선의 국방력은 너무 미약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때도 정유재란때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에 열을 올릴때 이에야스는 가신들을 영합하고 행정의 신뢰성을 높이며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등 자신의 기반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히데요시가 죽자 이에야스는 그 잔당들을 제거하고 히데요시의 오사카성을 함락, 전국을 통일, 일본 전역은 지속적인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일본의 몇 안되는 존경받는 장수, 경영자, 리더로 남아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패전을 경험하게 한 전투가 있으니 바로 미카타가하라 전투다.

 

 

 

미카타가하라(현 시즈오카 현 하마마쓰 시)에서 다케다 신겐이 이끄는 2만 7천의 군세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1만 1천의 군세(그 중 오다 노부나가의 원군 3천 포함)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다케다 신겐의 상락 작전 도중에 벌어진 전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역사적인 대참패이자, 유일한 패전으로 유명하다.

 

 

이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군의 일방적인 패배로 이에야스는 전사 직전의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으나, 가신 나쓰메요시노부(夏目吉信)와 스즈키 규자부로(鈴木久三郎)가 이에야스의 대역을 맡은 사이에 몇 안되는 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하마마쓰 성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이 때, 이에야스가 너무 공포에 쌓인 나머지 말은 안장위에서 똥을 쌌다고 전해진다.  위키백과 참조

 

 

 

신겐에게 쫓기면서 옷에 똥을 싼 줄도 모르고 혼비백산 도망, 성에 돌아와서 화가에게 지금의 이 모습을 그리라고 명한다.

 

그의 유명한 일화이다.

 

"나, 오늘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치욕적인 패배의 모습을 되새기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다짐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장수의 비장한 모습이다.

 

 

비록 일본의 장수이지만,

 

일본 역사상 최고의 경영자 중의 한 사람으로 그의 경영 철학은 여러 책을 통해서도 접할 수가 있다.

 

 

 

 

 

 

 

조은사람기프트 조은소리보청기 모두 조은사람들과 함께하는 세상입니다.

 

Posted by 링스러브
라이프 건강2015. 4. 16. 00:00

 

 

 

 

청력이 나빠진 분들에게는 시력이 나빠졌을 때 안경을 착용하듯이 보청기기 필요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시력에 따라 안경을 맞추어 끼듯이 보청기도 마찬가지다.

 

시각적 미디어산업과 컴퓨터산업의 발달이 시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면

청력 저하 또한 그러한 다양한 산업들 속에서 발생하고 있고

현재 국내 난청 인구가 약 250만명에 이르고 있지만 실제 보청기를 착용하는 비율은 약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요즘 들어서는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청력에 문제가 생기거나 난청과 함께 나타나는 이명증상 등의 돌방성난청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러한  돌발성난청의 경우는 한해에 약 5000명 이상 발생되고 한참 활동하는 30~50대에게 예고 없이 발병하고,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빠른 치료와 진단이 필요하겠다.

 

보청기 보급률이 낮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나이가 젊은데 보청기를 하면 주위의 시선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스스로의 편견과 더불어 부정적 인식, 부담되는 보청기가격 등이 한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대방의 말이 불분명하게 들리거나 대화도중 몇번을 되묻고 답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쌍방간에 짜증도 나고 업무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어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주위 많은 분들과 함께 공유되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청력이 안좋은 사람이 대체로 생활의 활력이 좀 약하거나 기가 약한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아마도 청력이 약하면 다수의 사람과 함께 있을때 여려 상황을 바로바로 파악 인지하지 못해서 그렇지 않을까한다.

 

여튼 몇 십년 전만해도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면 이상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대중화과 되어 있고 시력이 나빠 안경을 착용하는 것 쯤은 이제 일상화가 되었듯이

청력이 나빠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보편적인 인식과 현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궁금한 것이 가격적인 부분일 것인데

청각장애등급을 가지고 계신분이면 최저 27만원에서 최고 34만원(기초생활수급자)까지 지원이 되니 주저하지 말고 상담을 해보는 것이 좋을 듯한다.

 

청각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고 느껴진다면 청력테스트를 해보고 충분한 상담과 진단을 받아보는 것도 좋겠다.

조은소리 보청기 대구 성서센터에서는 청력테스트도 무료도 해준다.

당연히 친절한 서비스와 상담은 필수다.

 

스스로 자가 진단이 필요하면 난청테스트를 통해서 먼저 테스트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보청기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이 아니고 디자인도 기능도 성능도 가격도 많은 차이가 있으니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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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
시사이야기2015. 4. 14. 16:04

 

 

 

 

잊지 말아주세요

 

정인애

 

 

엄마, 노란색 이불이 기억나요

온 식구 이불 덮고 둘러 앉아

고구마 먹던 그 겨울이요

 

엄마가 지어주신 따뜻한 밥이 기억나요

끊여주신 미역국에 맛있게 아침밥을 먹던

내 생일이요

 

아빠, 굳은살 박인 까칠한 손으로 용돈 쥐어주시며

잘 다녀와라 눈빛으로 웃어주시던

그 아침이 기억이 나요

아빠는 온전히 가족을 위해 사시는

하늘 같은 아버지였음을 깨달은 그때가 기억이 나요

 

여름이 다가오지만 저는 몹시도 추워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의

따스하다 못해 덥고 덥다 못해 뜨거운 사랑만 기억나요

스스로 고유한 친구들

영은이, 지수, 유진, 경민이. 기준이

부모의 낙이고 희망이던

현민이, 가현이, 수진, 민지

누구보다 세상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살고 싶던

차웅이, 영빈이, 혜영이, 그리고 저는

어른들을 기다리며 별일 없을 줄 알았는데요

 

엄마

혹시 이 비극이 자신들 탓이라 참회하는 예수쟁이 몇 있다면

저들을 용서하세요

입으로는 예수의 길을 외치며 행위로는 배신자의 삶을 살았다고

평행수는 비우고 적재함 늘리는 일에 동조했다고

사람은 버리고 욕심만 챙기는 일을 거들었다고

용기 대신 비겁을, 촛불 대신 비웃음으로 가만히 있었다고

비로소 회개하는 예수쟁이 몇몇 있다면

엄마, 저들의 죄를 용서하세요

 

엄마

착한 내 친구들

살려내지 못해 아파하는 노란 리본 단 마음들 받아주세요

자식의 영정을 들게 해 어떡하냐고 우는 국민들 눈물 받아주세요

우리의 잘못이라고 가슴 치는 모두의 마음 받아주세요

 

대통령이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치가일 뿐이잖아요

자식이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데

맨발로 달려 나오지도 않고

수단과 방법을 다해

어떻게든 살려내려 하지도 않고

그리도 많은 자식이 죽었는데

목 놓아 울지 않는다고 욕하지 마세요

찢을 가슴도 없고 부모의 심장도 없는 걸 어떡하나요

 

엄마

그런데 묻고 싶어요

높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쓰려고 힘을 획득한 것입니까.

무엇을 지키기 위해 힘을 비축하는 것입니까.

국민을 위해 일할 그릇이 안 되는 이들이

국민의 운명을 짊어지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나라를 이끌게 되었습니까

한 번도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데

어른들은 왜 자꾸 저들에게 힘을 줍니까

왜 자꾸 저들에게 속아줍니까

 

엄마

이제부터는 인간다운, 진심을 가진,

부모의 심장을 지닌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세요

아무한테나 함부로 나랏일을 맡기지 말아주세요

엄마아빠가 먼저, 선생님, 아저씨 약속해주세요

부탁할게요

부디 우리의 죽음이

진실의 밀알로 정의의 함성으로

이 나라의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게 해주세요

잠자던 국민들이 바람보단 먼저 천둥보다 먼저 소리치게 해주세요

그러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엄마 울지 마세요

엄마, 살아주세요 살아내주세요

엄마가 살면 우리도 살아요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 본 추모시는 지난 2014년 5월15일(목) 개최된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촛불기도회”에서 발표된 추모시입니다

 

 

 

 

 

4.16

 

무슨 말로, 무슨 글로 이 란을 채워야할까

 

반드시 채워야한다면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

 

4.16

 

이라는 그냥 숫자 뿐.

 

 

 

왜 꼭 이 란을 채워야 하냐고 묻는다면..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뿐이라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일까..

 

 

 

4.16사태, 4.16사고, 4.16사건, 4.16참사, 4.16학살...

 

그 어떤 말로도 적합한 표현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그냥 '4.16' 이라고만 해야 할까보다.

 

1년이 훌쩍 지나왔는데도 아직도 차디찬 물속에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가 9명이나 있고 295명이 유명을 달리했건만

 

여전히 대한민국 시계는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서 있다.

 

 

 

2014년말 올해의 사자성어에 지록위마가 선정되었다.

 

지록위마 [指鹿爲馬]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의미로

 

거짓된 행동으로 윗사람을 농락하는 모습을 말한다.

 

 


 

전국의 교수 7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01명(27.8%)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선택했다고 한다.

 

남을 속이려고 옳고 그름을 바꾸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정치적으로는 윗사람을 농락해 자신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4년 지난해 우리는 4.16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었다.

 

지록위마...도대체 왜 나온 것일까?

 

724명의 전국의 교수들이 이 지록위마를 선택한 까닭은?...

 

 

 

 

4.16

 

304명의 무고한 생명들이 바닷물 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TV생중계로 생생히 지켜보아온 우리다.

 

그로부터 1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

 

목소리를 높이면 그들은 종북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대응을 하는  희한한 시대를 만들어 버렸다.

 

 

 

 

엄이도종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엄이도종(掩耳盜鐘). 자기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이다.

 

2011년 ‘올해의 사자성어’에 엄이도종이 선정되기도 했다

 

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또한 없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여전히 그 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이다.

 

 

 

 

내일, 모레면 1주년이 되는 날이다.

 

1주년이라고 기념식을 하고 또 그러겠지...

 

그러한  행사도 너무나도 중요하겠지만...

 

 

 

무고하게 비명에 가버린 아까운 그들에게,

 

그리고 살아 돌아왔지만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살아있지만 하루하루가 숨쉬는 것조차 힘겹다는 남은 가족들에게,

 

아니 이 시대 그 날을 잊지 않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마음이 가슴이 답답하다.

 

진실, 그 진실이 알고 싶다...

 

 

 

또 4월 16일은 돌아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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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
시사이야기2015. 4. 13. 00:00

 

연합뉴스TV 캡쳐

 

 

성완종 1951년생 2015년 4월9일 졸.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서산토건대표, 대아건설 회장,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경남기업 회장, 서산장학재단 이사장, 자유민주연합 총재특보단장, 주한 에티오피아 명예총영사, 선진통일당 원내대표 등을 역임한 기업가이자 정치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정치적 야망을 가진 그는 2000년에 충청포럼을 출범시키면서 충청출신 정관계인사, 언론인 등과 발을 넓히는 등 인맥관리에 들어가고 그 해 16대 국회의원 공천에는 실패했으나 2003년 자민련 총재특보단장을 맡으면서 정치에 본격 입문하게 된다.

 

17대에서 낙선, 18대에는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지만 불법선거 벌금 500만원 확정으로 당선이 무효화되는 정치역정을 겪는다.

 

그러는 가운데 경남기업은 경영상황이 안좋아지면서 법정관리에 처하게 된다.

 

 

최근에 그는 이명박정부의 자원외교와 관련한 비리 의혹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던 중 2015년 4월 9일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살하기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김기춘비서실장에게 10만 달러,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는 7억원을 줬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시신 수습과정에서 상의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지에서는  김기춘, 허태열 전 비서실장 외에 ‘유정복 3억, 홍문종 2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완구 국무총리의 이름도 적혀 있었으며 언론은 이를 '성완종 리스트'로 부르며 보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당사자들은 관련이 없다고 모함이라고 발뺌을 하는 가운데 홍준표지사의 측근이 돈을 받아 전달한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있는 사실 등

검찰은 이내 수사팀을 구성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는 태세다.

 

아마도 성완종리스트가 상당부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여지며 2012년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명박 전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친이와 친박의 갈등이 자원외교 관련 비리수사에서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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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
라이프 건강2015. 4. 12. 18:17

 

 

혹시 나도 난청?!

 

난청이 의심 되신다면 다음 항목을 체크 해보세요.

 

조은소리보청기 난청 체크리스트

 

문항

 항목

CHECK

1

주변에 잡음이 있을 때 대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2

상대방에게 다시 말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3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4

전화통화에 어려움을 느낀다.

 

5

다른 사람에 비해 TV나 라디오 볼륨을 크게 듣는다.

 

6

상대방의 말이 웅얼거리는 듯이 들린다.

 

7

특정 발음이나 특정한 소리 듣기가 어렵다.

 

8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의 입술모양을 읽으려 한다.

 

9

귀 또는 머리에서 윙윙 소리, 귀뚜라미 소리 등이(이명) 들린다.

 

10

청취가 어렵고 부담스러워 모임이나 대화를 꺼려하게 된다.

 

 

             문항당 1점씩 계산하세요.

 

0~2 : 정상 3~6 : 난청의심 7점 이상 : 이비인후과 및 보청기센터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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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
시사이야기2015. 2. 2. 06:00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한산도대첩을 그린 민족 기록화 (전쟁기념관)

 

 

 

임진왜란

1592년 4월 13일(음력) 임진왜란 발발

1598년까지 이어진 7년간의 전쟁으로 동북아시아 3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제1차 침략을 임진왜란, 1597년의 제2차 침략을 정유재란이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당시 조선은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이이의 의견이 묵살되는등 전혀 전쟁의 준비가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동인과 서인의 정쟁은 날로 심해져갔다. 

 

조선의 초기 사대교린정책은 명을 숭상하고 왜나 오랑캐를 배척하는 정책에 의해서 왜를 교린하고 있었는데,

한편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 정복의 야망으로 있던 때 조선통신사로 파견된 집권세력이덨던 동인의 김성일에 의해 전쟁의 기미를 느낄수 없다는 견해로 하여 일본의 전쟁의 뜻을 간파하지 못했다.

집권세력으로서 백성의 동요가 두려웠던 나머지 모두들 김성일의 의견을 따르게 된다.

 

 

건국후 200여년간 평화가 유지되었던 까닭에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대비도 없었으며 군기또한 굉장히 해이했던 것으로보니다. 문서상으로만 병력이 존재하고 실제로는 군역을 부과하지 않거나 대역인을 세우고 군포를 납부하도록 하는 방군수포와 대역납포가 공공연히 이뤄졌다.
오히려 경상감사 김수와 전라감사 이광이 선조에게 명받고 성곽을 수리하고 병장비를 정비하면서 전쟁 준비를 서두르자 지방에서는 부역이 너무 가혹하다는 상소가 빗발쳤고 탄핵까지 받을 뻔하였다.

 

 

 

1592년 4월 13일(음력) 20만 병사로 조선을 침공한 일본.

 

4월 14일 정발의 부산진성 함락

 

4월 15일 송상현의 동래성을  함락

 

4월 25일 상주 함락

 

4월 28일 충주 탄금대를 배수에 진을 친 신립의 패배.

 

 

세 갈래 길로 북진 조선을 함락시켜가던 일본

1. 고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으로 하는 제1군은 부산·밀양·대구·상주·문경 등을 거쳐 충주에 이르고

2. 제2군은 가토 기요마사가 인솔하여 울산·영천 등을 거쳐 충주에서 제1군과 합세하여 한양으로 진군하였으며,

3. 구로다 나가마사의 제3군은 김해를 지나 추풍령을 넘어 북진하였다.

 

 

5월 2일 개전 20일만에 한양을 점령.

 

5월 16일 유해령전투 부원수 신각이 승리로 이끈 조선 육군의 최초의 승리

 

5월 18일 임진강 함락

 

5월 24일 정암진전투 곽재우등 조선 의병이 최초로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6월 13일 평양 함락

 

이미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백성을 버렸으며 몽진에 몽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화가난 백성이 노비문서를 불태우는 등 궁궐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5월 7일 옥포해전에서 왜군 42척을 격침. 이순신의 첫 승전이면서 전쟁 이후 조선수군의 첫 승리.

 

5월 8일 적진포해전 왜선 5척 왜군 2840명 전사

 

5월 29일 사천에서 왜군 13척을 전멸. 거북선을 처음으로 투입.

 

6월 2일 당포해전 왜선 21척 격침. 왜군 2820명 전사

 

6월 5일 당항포 왜선 26척 왜군 2720명 전사

 

7월 8일 . 한산도대첩. 이순신 3대 대첩(한산도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

한산도대첩. 임진왜란 3대 대첩(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진주성대첩)중 하나로 학이 날개를 편 것과 같은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학익진 전법으로 왜선 59척을 격침 나포. 4~5000왜병 전사.

왜의 수륙병진계획을 좌절시켰으며 왜수군의 주력을 거의 괴멸시킨 대첩이다.

이 한산도대첩의 승리로하여 조선수군이 남해안의 제해권을 거의 장악. 임진왜란의 판도를 달리하게 하는 전투였다.

 

7월 10일 경남 진해 안골포에서 왜선 42척 모두 격침. 왜군 3960명 전사

 

9월 1일 부산포 왜선 128척 왜군 5000여명 사상 한산도대첩후 잠잠하던 해전이 부산포승리이후 완전 제해권을 장악

 

 

외국의 역사가 헐버트(Hulbert,H.G.)도 “이 해전은 조선의 살라미스(Salamis) 해전이라 할 수 있다. 이 해전이야말로 도요토미(豊臣秀吉)의 조선 침략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라고 감탄하였다.

 

 

전국 각지의 의병 봉기

김면 경상도 거창 고령

조헌 충청도 옥천

곽재우 경상도 의령

고경명 전라도 장흥

김천일 호남에서 거병

정문부 함경도

휴정 유정 묘향산 승병

등등

 

 

7월 8일 권율 황진의 1000여 조선군이 2000여 왜군과 맞서 승리.

 

10월 4일~10일  진주성대첩 (임진왜란 3대 대첩중의 하나) 김시민의 3800여 관군과 백성이 3만 왜군을 물리침.

김시민을 포함 1000여명 사상 일본군 10300여명 사상.

 

1593년 2월 13일 행주대첩(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 2800여 병사가 3만 왜군을 물리침

조선군 130여명 사상. 왜군 15000여명 전사 9000여명 중상

 

1597년 7월 4일 칠천량 해전 원균의 거북선 3척과 판옥선 100여선 침몰 수군 20000여명 궤멸.

원균의 사망. 배설이 12척을 끌로 도주 정유재란의 빌미가 됨

 

8월 20일 정유재란 발발. 명나라와 왜와의 임진왜란 종결을 위한 강화가 결렬되자 왜가 재 침공해 옴

 

9월 16일 명량해전 13척의 전함으로 왜선 31척 완파 92척 판파. 칠천량해전 당시 역모의 모함으로 파직되어 있던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되어 전쟁에 투입. 선조가 칠천량 패전 이후 조선수군을 폐지하려고 하였으나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비록 전선의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은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여 수군폐지불가론을 펼쳤다.

 

1598년 7월 19일 절이도해전 전라도 고흥 절이도에서 왜선 50여척 왜군 16000여명 사망

 

12월 16일 노량해전 이순신이 전사한 전투. 왜선 200여척 침몰. 100여척 나포. 150여척 파손.

도주하는 일본 함대를 추격하던 이순신은 관음포에서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잔병들의 퇴각,  노량해전이 끝나고 정유재란도 끝이 난다.

 

그리고 7년간의 긴 전쟁도 끝이 난다.

 

 

7년간의 전쟁 이후 100만명 사망, 경작지의 약 70% 유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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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스러브